역사

켄로쿠엔이 걸어온 길고 깊은 역사.

정원 건설 이전

다양한 시설이 세워진 카가번과 관련 깊은 토지

1582년(덴쇼 11년)에 가가번 초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가 가나자와성에 입성하자마자 고다쓰노 대지에 이어지는 평탄한 토지에 도시이에의 보리사 '호엔지'와 기도원인 '하차쿠지'를 건립하였습니다. 약 30년 후인 1620년(겐나 6년), 이 두 절은 7명의 중신이 자신의 집으로 삼고자 이전시켰습니다.

1601년(게이초 6년), 이후 2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 다마히메가 시집을 갈 때 에도에서 함께 온 300명의 수행인을 위해 숙소가 지어졌고, 그곳은 에도마치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에도마치가 만들어진 장소는 현재 햣켄보리에 면한 찻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장소입니다. 다마히메가 죽은 후 주민들은 에도로 돌아가고 숙소는 바로 철거되었습니다. 그 옛터에는 1659년(만지 2년) 건축과 영선을 담당하던 관청인 작사소(가옥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는 곳)가 옮겨왔습니다.

해자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보이는 숲이 겐로쿠엔의 발상지. [가슈 가나자와성도](가나자와시립 다마가와 도서관 소장)
예전에 에도마치가 있었던 이시카와몬마에.

정원 건설 이후

역대 번주가 우아한 놀이를 즐긴 '렌치테이'.

겐로쿠엔의 정원 조성은 성에 면해있는 경사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676년(엔포 4년), 5대 번주 쓰나노리가 작사소를 다시 성 안으로 들여와 자신의 별장을 짓고, 그 주변을 정원으로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렌치테이'라고 불렸지만,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무렵의 호칭은 '하스이케노 우에오로지'라고 불렸으며, 번을 방문한 손님과 중신들을 접대하거나 단풍놀이 등의 연회를 즐기던 풍류의 장으로서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역대 번주나 중신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렌치테이지만, 1759년(호레키 7년)의 큰 불로 일부가 소실되었고, 그 후 11대 번주 하루나가에 의해 1774년(안에이 3년)에 미도리타키 폭포와 유가오테이, 1776년에는 우치하시테이가 건축되었습니다.

번주의 의향에 의해 변천해 온 '치토세다이'

렌치테이 상부에 있는 평탄한 땅을 '지토세다이'라 합니다. 번주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으며, 지토세다이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번정 시대도 중반을 지난 1792년(간세이 4년), 하루나가는 번교(번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기관)인 '메이린도'와 '게이부칸'을 창건하였습니다. 하루나가의 뒤를 이어 12대 번주가 된 나리나가는 선대가 개교한 번교를 이전시켜 1822년(분세이 5년) 그 옛터에 자신의 은거지인 '다케자와 어전'을 조영. 같은 해, 나리나가의 의뢰로 오슈 시라카와번주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에 의해 '겐로쿠엔'이라 이름지어졌습니다.
나리나가가 죽은 후, 건평 4,000평에 방 수 200개를 넘는 웅장한 어전인 다케자와 어전은 적자(嫡子)인 13대 번주 나리야스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나리야스는 가스미가이케 연못을 넓히거나 멋진 나무를 심는 등 정원을 넓히고 정비하여 1860년(망엔 원년)에는 렌치테이 사이에 있던 문과 담을 헐고 초대형 정원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나아가 1863년(분큐 3년)에는 어머니인 신류인의 은거처로서 다쓰미 어전(현재의 세이손카쿠)이 조영되어, 현재와 거의 같은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다케자와 어전이 철거되고 가스미가이케 연못의 첫 번째 확장이 이루어졌을 무렵이라 여겨진다. [다케자와 어전, 겐로쿠엔 겸 고친쥬 고화도](가나자와시립 다마가와 도서관 소장)

메이지 이후

번주의 정원에서 시민들의 정원으로

1874년(메이지 7년), 겐로쿠엔은 전면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이와 아울러 많은 찻집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1880년(메이지 13년)에는 세이난전쟁에서 전사한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메이지 기념지표'가 건립되었습니다.
1922년(다이세이 11년), 국가의 명승으로 지정된 겐로쿠엔은 1985년(쇼와 60년)에는 명승에서 특별명승으로 격상되었고, 정원의 국보라고도 불리는 최고의 정원으로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94년(헤이세이 6년)부터 구상 수립에 들어간 '나가타니이케 연못 주변 정비 사업'이 2000년(헤이세이 12년)에 준공되었습니다. 새로운 정원 안에 메이지 초기에 철거된 '시구레테이'와 '후나노오친'이 재현되는 등, 새로이 두 갈래의 흐름을 가지는 정원으로 정비되어 이로써 겐로쿠엔은 한 층 더 확장되었습니다.

시구레테이
후나노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