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자와성 공원

카나자와성공원의 돌담

 카나자와성만큼 다종다양한 돌담을 가진 성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어렵습니다. 성의 바깥 주변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정취가 가득한 높은 돌담을 배치하고, 번주가 사는 어전이나 정원 주변에는 예술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돌담군('기수의 돌담')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장소에 따라 돌담 양식을 달리 하는 것과 에도시대에 화재나 지진 피해와 수리가 반복되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돌담에는 도깨비문 막기나 '음양석', '구갑석'과 같은 음양오행 사상의 영향도 보입니다. 카나자와성 공원 돌담의 내력이나 비전 기술에 관해서는 카가번의 아노우가 남긴 '고토가의 문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돌은 성의 남동쪽 약 8km에 있는 토무라야마 주변에서 가져온 야스야마이와, 청석, 적석의 배색이 독특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현지에는 당시의 채석장이나 돌을 나르던 길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본격적인 돌담은 1592년(분로쿠 원년) 혼마루 동쪽의 높은 돌담에서 시작하여 케이쵸/겐나 시대의 외곽 정비, 대화재를 계기로 한 1631년(칸에이 8년)의 성내 재정비에 의해 현재의 구획과 돌담의 모체가 완성되었습니다. 큰 개축이 있었던 것은 재해 부흥에 관한 칸분시대, 호레키~안에이시대, 쿄와/분카시대 등 입니다. '우치코미하기, 키리코미하기'는 기술 진보에 의한 시기적 차이가 있다고 여겨져 왔지만, 칸에이 시대 이후 동시에 존재하였고 장소에 따라 쓰임새가 달랐던 것입니다. 각인은 석재 확보를 담당한 가신 별로 사용된 식별 부호라고 생각되며, 기호는 케이쵸 후반~겐나 시대에 증가하였고, 칸에이시대가 최고조였으며, 칸분시대에는 숫자와 한자 등으로 기재하였으나, 이후에는 사라졌습니다. 석재 확보가 후신부교(건축 담당관) 밑의 돌담 축조 조직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 큰 화재로부터 건물을 지킨 구갑석
    (도바시몬)

  • 음양의 큰 돌을 사용한 거울 쌓기
    (오자카몬)